사찰의 일상은 으레 새벽 3시(기상)부터 저녁 9시(취침)까지다.
그리고 하루의 처음과 끝은 예불(禮佛)로 시작하고 매듭짓는다.
예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스님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한 번,
일과를 마치면서 한 번(저녁 6시 무렵),
하루에 두 번씩 법당의 부처님 앞에서 예불을 올린다.
출가할 때 부처님과 약속한
수행과 전법의 의지를 다잡는 시간이다.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인 사시(巳時)에도 예불을 올리는데
이때는 불단(佛壇)에 특별한 물건이 올라간다.
바로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밥인 마지(摩旨)다.
사시예불은 통상적으로 오전 10시에 하는데,
이즈음의 절에선 스님이나 신도가
커다란 밥그릇을 받쳐 든 채 법당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를 공양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밥그릇은 반드시 오른손으로 들고 어깨 위로 올려야 하는데,
이는 만중생의 지고한 스승인 부처님을 향한 경배의 마음을 상징한다.
더불어 신성한 스승을 위한 밥을 대접하는 일이니,
필히 의례가 따른다.
마지를 올리고 나면 보통 <천수경>을 독송한다.
아침 탁발로 음식 먹은 후 금식하니
정오 가까울 때 수저 드는 일종식도
밥을 나르는 방법뿐만 아니라 밥의 양에도 절절한 예경심이 보인다.
마짓밥은 그야말로 고봉밥이다.
큼지막한 놋그릇에 쌀밥을 수북하게 담아 진상한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밥을 매끈하게 다져
둥그렇게 매조지한 형태는 푸짐하면서도 정겹다.
‘밥벌이’ ‘밥벌레’ ‘밥도둑’ ‘밥은 먹고 다니냐?’ 등등
한국인 특유의 밥에 대한 애착과 ‘밥이 보약’이란 오랜 믿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반면 맨밥만 가득히 올리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불교에서는 밥 한공기와 너덧 가지의 찬을 내는 것이 풍습이다.
중국에선 이른바 대륙적 기질과는 자못 상반되게
간장종지만한 그릇에 밥이나 생쌀을 담는다고 한다.
아울러 마지(摩旨)란 단어는
얼핏 산스크리트(범어, 梵語)의 음차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맞이하다’라는 순우리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마지는 부처님을 맞이하기 위한 밥이니까.
또한 옥편을 샅샅이 뒤지면
‘摩’와 ‘旨’엔 각각 ‘가까이하다’와 ‘맛’이라는 의미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래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낱말에
그 뜻에 부합하는 한자를 끼워 맞춘 ‘역(逆)전환’으로 짐작된다.
해인사승가대학장 원철스님의 견해다.
마지는 하루에 한번 사시에만 올린다.
이유는 간명하다. 생전의 부처님이 하루에 한번, 이 시간대에만 드셨기 때문이다.
일일일식(一日一食)과 오후불식(午後不食)은
부처님을 비롯해 당신의 제자들이 철석같이 지켰던 계율이다.
무소유와 절제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최초의 승단(僧團)은 아침에 저자거리로 나가 탁발을 해서 모아온 음식을 먹고,
이후에는 철저히 금식했다.
남방불교에서는 지금껏 준수되고 있는 법칙이다.
이와 달리 사계절이 뚜렷해 저장식(貯藏食)이 가능한 북방 불교권에서는
삼시세끼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도입됐다.
한편 한 끼 만으로 하루를 버텨내야 하니,
최대한 정오(正午)에 가까운 시각에 수저를 드는 것이 일종식(一種食)의 관례다.
그런데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법.
부처님 당시에도 타고나기를
먹성이 좋은 스님들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끼니때를 놓치면
종일토록 쫄쫄 굶어야 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몇몇이 반기를 들었다.
정오가 지나더라도 그림자의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 이내라면
밥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이른바 이지정(二指淨)으로,
열 가지 경우에 대한 계율 논쟁인 십사비법(十事非法)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깐깐한 원로들은 이를 불허했고
결국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교단이 분열되는 계기가 됐다.
대중부는 대승불교의 싹을 틔웠다.
‘밥투정’이 역사를 만든 셈이다.
[불교신문3096호/2015년4월11일자]
출처 :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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